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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장려상 수상작 (에세이)>

 

지인이나 친인척의 학대를 보고도 3자라는 이름 앞에 숨기보다는 신고할 수 있는 용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동학대가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이런 선진 프로그램이 모두에게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오빠, 형님 좀 이상하지 않아? 수찬(가명)이 쳐다보는 표정이 지나치게 날카롭지 않았어? 느낌이 좀 이상해. 수찬이 표정도 심상치 않고.”

 

자기도 그렇게 느꼈어? 나도 오늘은 좀 심한 것 같더라고. 워낙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이니 종잡을 수가 있어야지.”

 

언제부턴가 형님의 행동에 미심쩍은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조카 수찬이도 예전과 달리 말수가 급격히 줄었습니다. 형님 앞에서는 안절부절못하는 모습마저 보입니다. 새엄마라고는 하지만 수찬이를 아끼는 모습을 보여 왔던 터라, 둘 사이를 크게 걱정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수찬이를 훈육하는 형님의 행동이 과하다 싶어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 겁니다.

 

 

아주버님은 2년 전 형님과 재혼을 했습니다. 말이 재혼이지 호적에 올리지도 않은 상태로 세 살 된 아들 수찬이를 데리고 형님과 살림을 합친 겁니다. 제가 남편과 결혼할 당시만 해도 아주버님은 이혼 후 수찬이와 함께 시댁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온라인 게임을 통해 형님을 만났고, 사귄지 두 달 만에 재혼을 선언했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어서 시부모님을 비롯한 가족 모두가 걱정했습니다. 아버님은 무슨 재혼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하느냐. 좀 더 만나보고 신중하게 결정해라고 말리셨습니다. 어머니는 수찬이 생각은 안하느냐. 새엄마 될 사람이 애와 친해질 시간도 없이 재혼부터 하는 건 아닌 것 같다며 반대하셨습니다. 당시 아주버님은 마음이 허했는지 막무가내로 재혼을 밀어붙여 한동안은 집안이 발칵 뒤집혔었습니다. 형님은 명랑한 성격에 흥이 많아 보였습니다. 처음 보는 자리에서도 저나 시댁어른들께 허물없이 대했고, 앞으로 잘 지내보자며 살갑게 굴었습니다. 그간의 걱정이 기우였다고 느낄 만큼 유쾌하고 밝아서 수찬이와도 잘 지내겠구나 싶었습니다.

 

가족이 되고 1년 정도 지났을 무렵부터였습니다. 깔깔거리며 웃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표정이 돌변하는 형님을 보고 어딘가 좀 이상하다고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감정기복이 심하고 감정조절도 잘 안 되는 모습 같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형님은 오래 전부터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감정의 기복이야 병 때문이라고 쳐도, 사소한 일에도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하는 형님을 보고 저희 가족들 모두 고개를 가로젓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습니다. 수찬이는 이제 막 말이 많아지기 시작할 나이였기 때문에 형님의 그런 부분이 나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걱정됐습니다. 우려가 현실이 된 걸까요. 수찬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또래보다 말이 느리고 인지도 부족해 보였습니다. 행동도 어딘가 좀 이상했습니다. 저나 할머니 앞에서 활짝 웃던 아이가 형님 앞에서는 웃음기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는 새엄마와의 애착형성이 잘 안되고 있구나하는 걱정이 밀려왔습니다.

 

 

전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제가 평일 오후 아주버님 댁으로 놀러 갔을 때였습니다. 초인종을 누르니 막 잠에서 깨어난 형님이 문을 열어줍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불이 꺼진 작은방에서 수찬이가 울면서 달려옵니다. “작은 엄마, 수찬이 배고파하며 품에 안기는 수찬이를 보면서 형님이 애를 방치하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지만 괜한 오해인 것 같아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남편과 통화하면서 상황을 전해주자 형수가 수찬이 밥을 잘 안차려 주나봐?”라며 농담을 던집니다. 별 생각 없이 던진 남편의 말이 이상하게 귓전을 맴돌았습니다.

 

우연이 반복되면 합리적인 의심이 시작됩니다. 얼마 전 수찬이도 먹일 겸 직접 만든 갈비찜을 싸들고 아주버님 댁을 찾아갔습니다. 작은 엄마가 왔는데도 제 방에 콕 박혀 나오지 않는 수찬이가 이상해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더니 얼굴이 말이 아니었던 겁니다. 이마부터 코, 아랫입술까지 피투성이가 된 수찬이를 보고 할 말을 잃었습니다. 형님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수찬이를 놀이터로 데리고 나갔다가 콩크리트 바닥에 넘어져 얼굴이 긁힌 거라고 합니다. 병원에서는 치료만 잘 받으면 상처가 남지 않을 거라고 했다는데 상처 부위가 너무 커서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았습니다.

 

애가 얼마나 극성맞은지 몰라. 수찬이 데리고 밖에 나가면 정말 한 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다니까.”

 

나도 모르게 형님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아무 감정이 없는 표정이었습니다. 형님에게 수찬이를 친자식처럼 키워주길 바랬던 것은 아니지만, 너무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아 화가 났습니다.

 

형님. 수찬이가 극성맞다고 해봤자 겨우 네 살이에요. 네 살짜리 애들이 다 그렇죠. 앞으로는 어른인 우리가 더 신경 써야 할 것 같아요.”

 

제 얘기에 기분이 나빴는지 형님이 한 마디 덧붙입니다.

 

동서. 지금 내가 새엄마라고 애 신경 안 쓴다고 돌려 말하는 거야? 좀 듣기 거북하네. 어쨌든 내 자식인데 동서가 신경 쓸 일도 아니고.”

 

더 대꾸를 했다가는 동서 간에 큰 싸움이 될 것 같아 꿈 참았습니다. 집에 가겠다고 현관 쪽으로 나왔더니 수찬이가 작은 엄마네 집으로 수찬이도 갈래라며 신발을 신더군요. 그 모습이 측은해 한참을 안아주었습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작은엄마인 저를 유독 잘 따르던 아이였기에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보고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아무래도 아주버님에게 얘기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을 꺼냈습니다.

 

아주버님은 수찬이 보고 뭐 느끼시는 거 없나? 난 왜 자꾸 기분이 이렇게 이상하지?”

 

남편이 아주버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직접적으로 말하기가 뭣했는지 돌려 말합니다.

 

, 요즘 별 일 없지? 형수랑은 괜찮고? , 수찬이는 형수 잘 따라?”

 

뭐 그렇지. 새엄마인데 처음부터 살가울 수가 있나. ? 무슨 일 있어? 수찬이 다친 것 때문에 그래?”

 

남편은 결국 아무런 얘기도 꺼내지 못한 채 전화를 끊었습니다.

 

결정적인 사건은 그로부터 얼마 안 있어 일어났습니다. 주말에 시댁에 들렸다가 나오면서 근처에 사는 아주버님 내외에게도 잠깐 인사나 하고 오려고 댁을 찾았습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있었는데 우리가 온 것을 모르는 형님이 수찬이를 훈육하고 있었든가 봅니다. 수찬이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두 손을 모아 비는 시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형님의 손이 수찬이의 뺨을 향해 날아갑니다. “하고 뺨때리는 소리가 아파트 단지 안에 울려 퍼집니다. 이번엔 수찬이의 고개가 하고 돌아갈 정도로 또 다시 뺨을 세게 내려칩니다. 부랴부랴 형님이 있는 쪽으로 달라가 형님을 뜯어 말렸습니다. 그러자 형님이 갑자기 울기 시작합니다. “으흐흑, 애 때리는 나도 가슴이 아파. 누가 보면 내가 계모라서 때린다고 하겠지만 애가 이렇게 버릇이 없는데 고쳐놔야지.”

 

때린 강도가 얼마나 심했던지 실핏줄이 터진 수찬이를 보면서 형님 말에 도저히 수긍할 수가 없었습니다.

 

형님, 그래도 이 정도면 학대 아니에요? 새엄마 뭐 이런 걸 다 떠나서 네 살짜리 애를 이렇게 때리는 건 학대라고요.”

 

학대? 지금 말 다했어? 어따 대고 학대래? 네가 봤어? 내가 학대하는 거?”

 

형님은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제 멱살을 잡으며 달려들었습니다. 남편이 형님을 제게서 떼어놓는 사이 저는 수찬이를 데리고 주차장을 빠져나와 시댁으로 갔습니다. 맞은 건 수찬이인데 제 가슴이 더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간에는 형님을 오해하는 것 같아서 참았지만 더는 참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그 사이에는 없었던 수찬이의 팔과 다리의 멍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머니. 제가 봤는데 형님이 너무 심한 것 같아요. 애가 말을 안 들어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세게 때릴 수가 있어요. 수찬이 팔이랑 다리에 멍든 것 좀 보세요. 수찬아, 이거 누가 그랬어? 너 어디서 넘어졌어?”

 

엄마가 그랬어.”

 

정말이야? 수찬아 정말 엄마가 그랬어?”

 

아니에요.”

 

엄마가 그랬다던 수찬이는 갑자기 말을 바꾸더니 배가 고프다며 냉장고로 달려갑니다. 수찬이를 따라가 재차 물어도 수찬이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날 밤 남편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빠, 우리 아무래도 신고해야 할 것 같아. 이렇게 놔두다가 정말 수찬이 어떻게 될 것 같아.”

 

그래도 형이 있는데 우리가 나서는 건 모양이 좀 아니지 않나? 어쨌든 우리는 제3자잖아.”

 

아주버님만 믿고 있다가 수찬이 잘못 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 아까 오빠도 봤잖아~ 아무래도 정상이 아닌 것 같아. 아주버님한테 강력하게 얘기를 해보든가. 아니 수찬이 상태가 이런데 아주버님은 느끼는 게 전혀 없나?”

 

늦은 밤 아주버님과 얘기를 하고 오겠다며 남편이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왔습니다. 결론은 훈육 과정에서 생긴 일인 만큼 형님과 아주버님이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더군요. 아주버님이 그렇게 말한 이상 더는 어찌할 방법이 없어 수찬이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는 걸 억지로 들여보내고 수찬이가 걱정되어 아파트 입구에 앉아 남편에게 기대 한참을 울 때였습니다. 경비아저씨가 다가오더니 “605호 가족 맞으시죠?”라며 아는 척을 합니다. 그간 안면을 터온 터라 눈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런데 그 집 엄마가 좀 엄하신가 봐요. 아이를 아주 엄하게 혼내는데 뭐라 하기도 그렇고 보기가 참 그렇더라고요.”

 

? 혹시 오늘 말고도 애 때리는 걸 보신 적이 있나요?”

 

아니 저번에 옆 동에 다녀오는데 그 집 엄마가 놀이터 옆에서 아이를 내동댕이치고 있더라고요. 무슨 화나는 일이 있는지 몰라도 애 멱살을 잡고선 시멘트 바닥에 던지니 아이가 완전 까무러치더라고요. 얼굴이 완전히 까져서 우는데 받아주지도 않고. 그러다 사람들이 오니까 그제야 품에 안고는 조심하지 그랬냐고 그러는데. 아휴~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 애가 놀다가 넘어진 게 아니고요?”

 

수찬이가 얼굴이 피투성이가 돼 병원에 다녀온 날.

  • 신고하는 용기, 다시 찾은 미소

  • 수상자 : 김훈미

  • 201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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